부사는 참 좋으니

2023. 12. 4. 18:33VIDA

글을 온전히 쓰려고 하니 하나를 못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임시저장에 쌓여있는 글의 숫자를 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짧게라도 글을 조금씩 남겨보려한다. 간간히 들러주는 이들이 있음에 감사하며.

 

나는 말에, 특히나 글에 부사를 자주 붙이는 편이다. 수식되지 않은 단어들로부터 형식적인 어투가 묻어나오면 내 뜻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한편 인위적인 의성어나 의태어가 붙어있지 않은 순수한 텍스트를 좋아하는 것은 이것들의 연장선이다. 과장된 단어들에서 희석되는 글의 에너지 힘 의미 의도. 뭐 이런것들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게 됐다. 구태여 만드는 낭만이 아니라 놓여졌더니 낭만인 것. 낭만스러우려고 걷는 길이 아니라 뒤돌아보니 낭만인 것. 소설을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소설처럼 예뻣던 것. 그런 것. 아마도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은사님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그런 것이렸다.

 

요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새로이 관계를 맺을때 스치는 그들의 표현과 삶에서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물론 이것들을 이질적으로 느낀다는 것은 내가 나의 모양을 점점 더 공공히 해간다는 것이기에 때론 경계스럽다. 그러나 그러다 또 나의 주변에서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그들과 함께할때면 우리의 시간은 자연스레 낭만이 되었고 우리의 말과 글은 자연스레 사랑을 그렸다. 그러면 또 이것이 그렇게 편하고 사랑스럽고 이 안에 편히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모든 말과 표현에 그저 해석을 덧대지 않아도 되는 것, 구태여 해석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편안함. 존재 자체로의 편안함. 나는 이것을 사람냄새로 표현한다.

 

어제 싸부님과 하필 해질녘에 너른 들판을 걸으며 서로의 한숨이 흩어지는 순간에, 우리 참 많은 시간 함께 했구나 했다. 이야기는 멈출 줄 모르고 풍경은 아름답길 그치지 않았다. 스승님의 말씀따나 나의, 어쩌면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며 행복하고 시간을 보내며 행복하다가,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조금' 공유하는 우리의 관계는 아름답다. 그리고 '참' 보람차다. 이런 류의 부사들이 나를 웃음짓게 한다.

 

거세게 달리다 역시나 나는 이 따듯함에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낮잠을 자려고 누우니 나를 양쪽으로 둘러싸는 두 강아지에 모든 불안이 씻겨 나간다. 어지러운 생각들을 잠시 뒤로하고 온전히 사랑에 덮이는 시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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