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알고리즘의 축복보다는 (나는 왜 음악을 좋아하냐면)

2023. 4. 26. 00:32VIDA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많다.

나아가 음악에 일가견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못지않게 많다.

대놓고 말하진 않더라도 각자의 음악세계에서 우리 모두는 식견이 충분하다.

당장 내가 추천해 주면 좋다고 내내 듣던 중학생 사촌동생이 이제는 내 추천이 식상하다며 등을 돌리는 것만 봐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음악을 듣고 즐긴다.

에어팟 런칭 후, 에어팟 제품군으로만 애플이 미국 시총 10위 기업에 또 다른 금자탑을 세울 수 있다고 하니.

 

스포티파이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힘을 못쓰지만 전 세계를 잠식한 이유라든지,

유튜브 뮤직이 프리미엄에 엮여 무료(처럼보이는) 형태로 제공되며 금세 한국시장 1위를 위협(유튜브까지 더하면 이미 넘은)하게 된 이유는 알고리즘의 축복이다.

 

내가 좋아요한 음악이라든지, 음악의 재생 길이, 반복 정도 등에서 이것저것 쏙쏙 수집한 알고리즘은 심장을 파고드는 음악들을 들려주곤 한다. 그게 마냥 좋다가 갈수록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이 일관되는 게 불쾌했다. 나아가 '나만 아는 노래'인 줄 아는(사실 알고리즘이 여기저기 잘 뿌리고 다니는) 노래가 많아지는 불쾌함이 더 컸다.

 

그래서 애플뮤직으로 옮겼다.

물론 애플뮤직도 일련의 알고리즘이 있지만, 애플뮤직은 알고리즘보다는 큐레이션이라는 이름을 달고 직접 큐레이터가 만든 재생목록을 매주 뿌려대어 더 섹시한 맛이 있다. 물론 앱등이인 것도 한 몫한다. 물론 홈팟에서 음악을 듣고 싶었던 것도 크다.

뭐가 진짜 이유인진 나도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야 나온다.

원래 운동을 할 때는 늘 '마드리드 TOP25'만 반복해서 듣는다. 스페인어가 좋기도 하고 스페인이 좋기도 하고 무엇보다 래게톤이 주는 리듬감이 운동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오늘은 원래 차트 맨 끝에서 날 기분 좋게 해 주던 음악이 사라져 저 밑으로 내려간 것 같아서 '스페인 TOP100'을 내가 찾던 곡부터 랜덤으로 놓고 운동을 했다.

 

그러다 귓전을 때린 노래.

처음 듣는 노래가 단 몇 초의 도입에서 심장을 뛰게 만든다.

도파민이 폭발한다.

 

보통 숏폼에 빠져들게 되는 과정의 흔한 설명으로 동반되는 것이 슬롯머신과 도파민이다. 슬롯머신의 랜덤확률이 가져다주는 기대감이 가진 도파민의 원리를 그대로 가져와, 스크린을 롤링하는 행위 자체가 다음 콘텐츠에 대한 무의식적 기대감 그리고 만족감을 주고 이 과정이 지속되는 도파민을 발생시킨다나 어쩐다나.

 

스포티파이나 유튜브 뮤직의 랜더마이즈된 알고리즘도 같은 원리로 동작한다. 그치만 내가 튼 건 알고리즘의 추천이 아니라 이미 구성된 100개의 음악 리스트인걸 이라며 반기술적 항변을 던져 본다.

 

아무튼 그 순간에 내 공간 전체는 영화가되고 나는 그 주인공이 되고 이 때면 랜덤을 한 곡 반복재생으로 바꿔 한 백 번 즈음은 듣게 된다. 알고리즘의 축복은 아니었지만, (랜덤 알고리즘을 들먹이면 할 말이 없다. 사회는 그리고 그 안에서 언어는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지 않나!) 비슷한 메커니즘에서 튀어나온 축복이 오늘 하루의 끝에서 참 기분을 돋아주었다. 고맙다.

 

이게 내가 개인적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다.

순식간에 내 공간을 영화로 만들고 감정을 뒤흔드는 도파민의 향연.

 

 

 

취할 생각도 없던 밤, 바다에서 벌거벗은 우리를 어쩔 생각도 없던 밤.
그냥 그 밤, 아무도 더 없이 그냥 우리뿐이었다고 알려주고 싶어"